2026. 8. 14. 23:58ㆍ카테고리 없음
『오디세이아』의 결말을 읽고 나면 묘한 의문이 남아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10년에 가까운 방랑을 견디고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다시 만났는데, 왜 또 길을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 작품의 목표였다면 모든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핵심부터 말하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안에서 오디세우스가 실제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아요. 테이레시아스가 예언한 미래의 의무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는 노 하나를 어깨에 메고 바다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땅까지 걸어가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지내야 해요. 이 장면을 이해하면 작품의 귀향이 단순한 집 도착이 아니라 신과 인간, 전쟁과 평화 사이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보입니다.
특히 흔히 ‘바다의 사람들’이라고 기억하기 쉬운 존재들은 원문에서는 오히려 바다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배도 모르고 노도 모르며 음식에 소금을 치는 문화조차 낯선 내륙의 사람들입니다. 왜 하필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야 하는지가 결말 해석의 중요한 열쇠예요.

오디세이아 영문 원문 확인
오디세이는 실제로 어디에서 끝날까?
『오디세이아』의 24권 결말은 오디세우스가 배를 타고 또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아니에요. 구혼자들을 처단한 뒤 그들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무장하면서 이타카에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질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오디세우스와 아들 텔레마코스, 아버지 라에르테스까지 전투에 나서면서 피의 보복이 이어질 듯한 순간이 찾아와요.
이때 제우스의 뜻을 받은 아테나가 개입해 싸움을 중단시킵니다. 작품이 선택한 종착점은 새로운 모험의 출발이 아니라 복수의 연쇄를 끊고 이타카에 평화를 세우는 장면이에요. 오디세우스 개인의 귀환이 공동체 전체의 질서 회복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가 “오디세우스가 다시 떠났다”고 기억하는 이유가 있어요. 23권에서 페넬로페와 재회한 오디세우스가 테이레시아스에게 들었던 예언을 아내에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아직 한 차례의 긴 여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줘요.
즉 현재의 사건과 미래의 예언을 구분해야 합니다. 작품의 서사 안에서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돌아와 왕권과 가족을 회복하고, 이타카의 충돌은 신들의 개입으로 멈춰요. 그 이후 언젠가 예언을 완수하기 위해 내륙으로 떠날 운명이 남아 있는 구조입니다.
결말과 예언 구분표
| 장면 | 내용 | 의미 |
|---|---|---|
| 23권 | 페넬로페와 재회 | 부부 관계 회복 |
| 23권 |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설명 | 미래 여행이 남아 있음 |
| 24권 | 구혼자 가족들과 충돌 | 복수의 악순환 위기 |
| 24권 결말 | 아테나가 싸움을 중단 | 이타카의 평화 회복 |
왜 오디세우스는 다시 떠나야 했을까?
오디세우스에게 두 번째 여행이 필요한 직접적인 이유는 포세이돈과의 관계 때문이에요. 오디세우스는 여행 중 포세이돈의 아들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눈멀게 했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며 승리를 자랑합니다.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를 벌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후 바다에서의 귀향은 더욱 험난해져요.
저승에서 만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간 뒤에도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배에서 사용하는 노를 어깨에 메고 내륙으로 계속 걸어가다가, 어느 사람이 그 노를 곡식을 까부르는 도구로 착각하는 곳에 도착해야 해요. 그곳에서 노를 땅에 세우고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바친 뒤 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여행을 단순히 “오디세우스는 모험을 좋아해서 집에 못 있었다”라고 해석하면 원문의 핵심과 거리가 있어요. 테이레시아스가 지시한 종교적 의무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귀환을 끊임없이 방해했던 바다의 신과 관계를 정리하고, 신에게 합당한 예를 갖추어야 완전한 평온에 이를 수 있는 것이죠.
내가 생각 했을 때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오디세우스에게 승리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그는 폴리페모스를 이겼고 구혼자들도 처단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까지 정리해야 합니다. 영웅의 완성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능력보다 그 이후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요.
오디세우스가 떠나야 하는 이유
| 요소 | 내용 | 해석 포인트 |
|---|---|---|
| 폴리페모스 | 포세이돈의 아들 | 갈등의 출발점 |
| 포세이돈 | 귀향을 방해한 신 | 해결되지 않은 관계 |
| 테이레시아스 | 내륙 여행을 예언 | 오디세우스의 남은 의무 |
| 제사 | 포세이돈에게 희생 제물을 바침 | 갈등의 종결과 화해 |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 대목은 표현을 정확히 알아두면 해석이 훨씬 쉬워져요. 테이레시아스가 말한 사람들은 ‘바다의 사람들’이라기보다 그 정반대인 바다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바다와 배를 모르고 노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오디세우스는 걸어가야 해요.
예언에서는 이 사람들이 음식에 소금을 치지 않고 붉은 뱃머리의 배나 배의 날개와 같은 노를 알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정확한 지명을 알려주는 지리적 지도라기보다 “바다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곳까지 가라”는 표지에 가까워요.
그곳에 도착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나가던 사람이 오디세우스의 어깨에 있는 노를 보고 곡식을 까부르는 농기구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바다에서는 누구나 알아볼 노가 내륙에서는 전혀 다른 물건으로 보이는 것이죠.
이 장면에서는 바다와 육지가 상징적으로 맞바뀝니다. 오디세우스의 삶을 지배했던 바다의 물건을 바다를 모르는 세계까지 운반함으로써 그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항해의 공간에서 가장 먼 곳까지 이동해요. 포세이돈의 영역인 바다를 벗어난 곳에서 포세이돈을 위한 제사를 올린다는 역설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예언 속 내륙 사람들의 특징
| 단서 | 표면적 의미 | 상징적 의미 |
|---|---|---|
| 바다를 모름 | 해양 생활과 멀리 떨어짐 | 오디세우스의 항해 세계 밖 |
| 배를 모름 | 항해 문화가 없음 | 전혀 다른 삶의 공간 |
| 노를 모름 | 노를 농기구로 착각 | 여행 종료의 표지 |
| 소금과 낯섦 | 바다 문화와 거리 | 바다에서 가장 먼 세계 |
노를 키질 도구로 본 장면의 의미
오디세우스가 들고 가는 물건이 하필 노라는 점이 중요해요. 노는 그의 방랑을 압축해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바다를 건너야 했던 오디세우스에게 노는 이동과 고난, 생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노를 어떤 사람이 곡식을 까부르는 키질 도구로 착각합니다. 하나의 물건이 바다에서는 항해 도구이고 육지에서는 농경 도구처럼 보이는 순간이에요. 이동과 방랑의 세계에서 정착과 생산의 세계로 의미가 바뀌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곳에서 노를 땅에 꽂아야 합니다. 배를 움직이던 물건이 더 이상 물을 젓지 않고 땅에 고정돼요. 작품의 상징을 따라 읽으면 끊임없이 움직였던 사람이 정지와 정착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뒤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바치고 이타카로 귀환하라는 예언이 이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오디세우스가 영원히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돌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노를 내려놓고 신과의 갈등을 해결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예언의 방향입니다.
오디세이 보기 전 이것만 알면 된다? 트로이 전쟁부터 오디세우스까지 스포 없이 정리
📋 목차🎬 오디세이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트로이 전쟁은 왜 벌어졌나?👥 보기 전 알아둘 핵심 인물🧠 오디세우스는 어떤 영웅인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관계📌 스포 없이 기억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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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의 의미가 변하는 과정
| 단계 | 노의 역할 | 해석 |
|---|---|---|
| 바다 | 배를 움직이는 도구 | 방랑과 이동 |
| 내륙 | 정체를 알아보지 못함 | 바다 세계의 종결 |
| 착각 | 곡식용 도구로 인식 | 항해에서 농경으로 전환 |
| 땅에 세움 |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 정착과 화해의 가능성 |
“노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소”는 단순히 멀리 떨어진 마을을 찾는 퀴즈가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바다 인생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어요.
아테나가 싸움을 멈춘 결말의 의미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죽인 순간만 보면 이야기는 복수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어요. 문제는 죽은 구혼자들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와 친족들이 오디세우스에게 복수하려 한다면 이번에는 오디세우스 쪽이 공격받고, 다시 그 가족이 복수하는 끝없는 피의 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24권의 결말에서 아테나가 전투를 멈추게 하는 장면은 이 연쇄를 끊습니다. 오디세우스의 개인적 승리가 도시 전체의 평화로 이어지려면 어느 지점에서는 복수가 중단되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영웅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신적 질서가 봉합하는 구조입니다.
이 장면은 작품 전체의 핵심 주제인 ‘귀향’을 넓게 보여줘요. 집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 귀향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남편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아들에게 아버지로 돌아와야 하며, 라에르테스에게 아들로 돌아가야 하고, 이타카에서는 다시 왕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공동체의 싸움까지 멈추어야 오디세우스는 진정한 의미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결말의 중심은 또 다른 모험보다 무너졌던 관계와 질서의 복구에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회복해야 했던 것
| 관계 | 문제 | 회복 |
|---|---|---|
| 페넬로페 | 20년의 부재와 의심 | 부부의 재인식 |
| 텔레마코스 | 아버지 없이 성장 | 부자의 연대 |
| 라에르테스 | 상실과 고독 | 부자의 재회 |
| 이타카 | 구혼자 처단 이후 갈등 | 아테나가 평화를 확립 |
오디세이 결말이 말하는 진짜 귀향
『오디세이아』를 단순한 모험담으로 보면 오디세우스가 집에 도착한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작품은 그렇게 단순하게 끝내지 않습니다. 고향에 도착한 뒤에도 정체를 증명하고 가족을 되찾고 적들을 처리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해요.
여기에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이 한 단계 더 붙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바다를 완전히 벗어나 포세이돈과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미래가 남아 있어요. 이것은 귀향이 공간적인 이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테이레시아스는 그 의식을 마친 뒤 오디세우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훗날 평온한 노년의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따라서 이 두 번째 길은 새로운 영웅담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이라기보다 오랜 방랑을 끝내기 위한 정리의 여정에 더 가까워요.
이렇게 보면 작품의 시작과 끝이 서로 대조됩니다. 처음의 오디세우스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어요. 예언이 가리키는 미래의 오디세우스는 그 바다의 상징인 노를 육지 깊숙한 곳에 세운 뒤 집으로 돌아갈 사람입니다. 그가 다시 떠나는 이유는 집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떠날 필요가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결말을 이해하는 핵심 구조
| 단계 | 오디세우스의 상태 | 의미 |
|---|---|---|
| 트로이 이후 | 바다를 떠도는 영웅 | 귀향을 향한 방랑 |
| 이타카 도착 | 정체를 숨긴 귀환자 | 가족과 왕권 회복 |
| 내륙 예언 | 노를 들고 걷는 사람 | 포세이돈과 갈등 정리 |
| 예언 이후 | 다시 집으로 돌아올 사람 | 방랑의 진정한 종결 |
❓ FAQ
Q1. 오디세이 결말에서 오디세우스는 실제로 다시 떠나나요?
A1.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본편에서는 두 번째 여행을 실제로 떠나는 장면까지 나오지 않아요. 테이레시아스가 예언한 미래의 여행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 제시됩니다.
Q2. 오디세우스는 왜 다시 길을 떠나야 하나요?
A2.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올리고 신과의 갈등을 정리하기 위해서예요. 테이레시아스가 귀향 이후 수행해야 할 의무로 알려줍니다.
Q3. 오디세우스가 모험을 좋아해서 다시 떠나는 건가요?
A3. 원문에서는 그런 이유로 설명되지 않아요.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따라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여행입니다.
Q4. ‘바다의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A4. 이 표현은 조금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예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다와 배, 노를 알지 못하는 내륙의 사람들입니다.
Q5.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은 실제 민족인가요?
A5. 작품은 특정 민족이나 정확한 지명을 알려주지 않아요. 오디세우스가 바다 문화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졌음을 확인하는 서사적 표지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Q6. 왜 그 사람들은 노를 알아보지 못하나요?
A6. 바다와 배를 전혀 모르는 곳에 사는 사람들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노를 농사에 쓰는 키질 도구처럼 바라봅니다.
Q7. 노를 키질 도구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A7. 오디세우스가 바다의 문화권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신호예요. 상징적으로는 항해와 방랑의 세계가 농경과 정착의 세계로 전환되는 장면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Q8. 왜 하필 노를 들고 가야 하나요?
A8. 노는 오디세우스의 긴 항해를 대표하는 물건이에요. 그 노를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육지에 세우는 행동은 그의 방랑이 끝나는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Q9. 오디세우스는 노를 어디에 세우나요?
A9. 어떤 사람이 노를 보고 키질 도구라고 부르는 곳이에요. 그 장소에서 노를 땅에 세우고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예언을 받습니다.
Q10. 포세이돈은 왜 오디세우스를 미워했나요?
A10.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한 사건이 결정적이에요. 폴리페모스의 기도 이후 포세이돈은 그의 귀향을 어렵게 만듭니다.
Q11. 폴리페모스 사건에서 오디세우스가 한 실수는 무엇인가요?
A11. 동굴을 빠져나온 뒤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승리를 자랑한 행동이 중요한 문제로 작용해요. 폴리페모스가 정확히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Q12. 테이레시아스는 누구인가요?
A12.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언자예요. 오디세우스는 저승에서 그를 만나 이타카로 돌아가는 방법과 그 이후의 운명에 관한 예언을 듣습니다.
Q13. 내륙 여행 예언은 몇 권에 나오나요?
A13. 핵심 예언은 11권에서 테이레시아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알려줘요. 23권에서는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에게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이 여행을 설명합니다.
Q14. 페넬로페는 남편이 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나요?
A14. 오디세우스가 재회한 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이야기해요. 따라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시점에는 미래의 의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공유됩니다.
Q15.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에게 어떤 제사를 드리나요?
A15.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에는 숫양과 황소, 번식용 수퇘지를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의식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 다른 신들에게도 제물을 바쳐야 해요.
Q16. 두 번째 여행의 목적지는 바다인가요?
A16. 정반대예요. 바다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 정도로 깊은 내륙으로 향해야 합니다.
Q17. 오디세우스는 그 여행 뒤 이타카로 돌아오나요?
A17.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에서는 제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라고 해요. 그래서 이 여정은 또 다른 영원한 방랑이 아니라 방랑을 끝내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Q18. 오디세우스의 죽음도 예언되나요?
A18. 테이레시아스는 포세이돈과의 의식을 마친 이후 오디세우스가 풍요로운 사람들 가운데서 평온한 노년을 맞는 미래를 이야기해요. 표현의 세부 해석에는 번역과 학술적 논의가 있습니다.
Q19.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죽는 장면까지 보여주나요?
A19. 아니에요. 호메로스의 작품은 오디세우스의 죽음을 실제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보다 훨씬 앞에서 끝납니다.
Q20. 작품 끝에서 누구와 싸우나요?
A20.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과 친족들이 복수에 나서면서 충돌이 벌어져요. 이 싸움은 아테나의 개입으로 중단됩니다.
Q21. 아테나는 왜 싸움을 중단시키나요?
A21. 복수가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는 상황을 끝내고 이타카에 평화를 세우기 위해서예요. 오디세우스의 개인적 귀환을 공동체의 질서 회복으로 연결하는 장면입니다.
Q22. 페넬로페와의 침대 시험은 무슨 의미인가요?
A22. 페넬로페는 둘만이 아는 침대의 비밀을 이용해 눈앞의 사람이 진짜 남편인지 확인해요. 오디세우스가 그 비밀을 정확히 알고 반응하면서 두 사람의 재회가 완성됩니다.
Q23. 침대와 노는 서로 반대되는 상징인가요?
A23. 그렇게 비교해 읽을 수 있어요. 움직이는 노가 방랑을 떠올리게 한다면 땅에 뿌리박은 혼인 침대는 집과 정착을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Q24. 오디세이 결말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요?
A24. 단순한 모험의 성공보다 귀향과 관계 회복, 질서의 복원이 중요해요. 가족과 왕국을 되찾고 복수의 연쇄가 멈추면서 귀향의 의미가 완성됩니다.
Q25. 오디세우스는 영원히 떠돌 운명인가요?
A25.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보면 영원한 방랑이 목적은 아니에요. 내륙에서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지낸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방향이 제시됩니다.
Q26. 두 번째 여행은 벌이라고 볼 수 있나요?
A26. 어느 정도 속죄와 화해의 성격을 읽을 수 있으나 단순한 형벌이라고만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신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Q27. 노를 땅에 꽂는 행동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A27. 원문에서는 예언을 완수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시예요. 문학적으로는 바다를 떠돌던 삶의 도구가 땅에 고정된다는 점에서 방랑의 종결과 정착의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Q28.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결말 해석에서 중요한가요?
A28.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바다에서 가장 멀리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바다의 영웅이 바다를 모르는 세계에서 포세이돈과의 문제를 정리한다는 역설이 생깁니다.
Q29. 후대 이야기와 호메로스의 결말은 같은가요?
A29. 같다고 보면 안 돼요. 고대에는 『오디세이아』 이후의 오디세우스를 다룬 다른 전승도 존재했지만, 그것들을 호메로스의 24권 결말과 섞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30. 한 문장으로 오디세이 결말을 해석하면 어떻게 되나요?
A30. 오디세우스는 다시 모험하기 위해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긴 방랑을 진정으로 끝내기 위해 한 번 더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에요. 노를 내려놓고 포세이돈과 화해한 뒤 집으로 돌아와야 그의 귀향도 온전히 완성됩니다.
글 정보
작성자 조중식 | 정보전달 큐레이터
검증 기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원문 및 공개 자료 확인
게시일: 2026-08-14 | 최종수정: 2026-08-14
오류 신고: mumusky@naver.com
면책 안내
본 글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의 서사와 널리 논의되는 문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정리한 정보성 글이에요. 번역본에 따라 인명과 표현이 다를 수 있으며, 상징에 관한 설명은 원문에 명시된 사건과 문학적 해석을 구분해 이해하는 것이 좋아요. 특히 후대에 전해진 오디세우스 관련 신화는 호메로스의 작품 자체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지 사용 안내
본 글에 사용된 일부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해 AI 생성 또는 대체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고대 작품과 인물에 대한 시각적 재현은 시대와 창작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미지가 작품 속 장면을 역사적으로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오디세이아』 본편에서 오디세우스가 귀향 직후 다시 떠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아요. 테이레시아스가 미래에 노를 들고 바다를 모르는 내륙 사람들에게 가서 포세이돈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예언합니다. 노를 농기구로 착각하는 순간은 바다 문화에서 완전히 멀어졌다는 표시이고, 문학적으로는 방랑에서 정착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고 읽을 수 있어요. 24권의 결말은 아테나가 복수의 싸움을 중단시키며 이타카에 평화를 회복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진짜 귀향은 집에 도착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족, 신, 공동체와의 관계를 다시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